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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되면 하루 세 끼를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이 생각보다 꽤 큽니다. 매일 다른 메뉴를 내놓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레스토랑 스타일의 리조또를 집에서 도전했다가 밍밍한 결과물에 실망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넷플릭스 요리 경연 우승 셰프로 잘 알려진 권성준 셰프의 정통 버섯 리조또 레시피를 따라 해봤는데, 제가 그동안 놓쳤던 포인트들이 한 번에 보이더라고요.

버섯 손질, 씻지 말라는 이유가 있었다
처음 "버섯은 씻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흙에서 자라는 채소를 씻지 않고 쓴다는 게 선뜻 납득이 안 됐거든요.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이유가 분명했습니다.
마트에서 유통되는 양송이버섯, 느타리버섯, 만가닥버섯 같은 재배 버섯들은 땅이 아닌 나무나 톱밥 배지에서 자랍니다. 흙 속 세균이나 농약 잔류물과 접촉할 일이 거의 없다는 뜻이죠. 표면에 약간의 먼지가 묻어 있다면 키친타월로 가볍게 닦아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핵심은 수분입니다. 버섯을 물에 씻으면 스펀지처럼 물을 빨아들이는데, 이 상태로 팬에 올리면 볶음이 아니라 찜이 되어버립니다. 마이야르 반응, 즉 고온에서 재료 표면이 갈색으로 변하며 풍미 물질이 생성되는 화학반응이 일어나려면 표면이 건조해야 합니다. 물기를 머금은 버섯은 그 온도까지 오르지 못한 채 수분만 날리다 끝나버리죠. 제가 예전에 만든 리조또가 왜 그렇게 싱거웠는지, 그 원인이 여기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오링새버섯이라고도 불리는 잎새버섯(마이타케)을 따로 떼어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에 노릇하게 볶아 토핑으로 올렸습니다. 여기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란 올리브를 냉압착 방식으로 한 번만 짜낸 비정제 오일로, 산도와 가열 시 발연점에 대한 오해가 많지만 이탈리아 현지에서는 볶음 요리에도 이것만 씁니다. 바삭하게 구운 잎새버섯 한 조각을 올려두니 식감 대비가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 양송이버섯: 먹기 좋은 크기로 슬라이스, 단백하고 부드러운 베이스 역할
- 참송이버섯: 손으로 찢어 넣기, 송이 향을 살리면서 가격 부담이 낮음
- 잎새버섯(마이타케): 따로 바삭하게 구워 토핑으로, 식감 대비 포인트
- 느타리버섯·만가닥버섯: 밑동을 정리하고 결대로 분리, 향의 층위를 더함
- 표고버섯은 제외 권장: 특유의 강한 향이 다른 재료를 압도할 수 있음
만테카레, 팬을 흔드는 데 이런 원리가 숨어 있었다
리조또를 만들며 가장 낯설었던 단어가 만테카레(mantecatura)였습니다. 만테카레란 불을 끈 상태에서 버터와 치즈를 넣고 팬을 전후로 강하게 흔들어 소스를 유화시키는 마무리 기법을 말합니다. 유화란 물과 기름처럼 본래 섞이지 않는 두 물질을 미세 입자로 쪼개 균일하게 분산시키는 현상인데, 쌀에서 녹아 나온 전분이 유화제 역할을 하고 팬을 흔드는 물리적인 힘이 그 반응을 돕습니다.
직접 해보니 처음에는 팬 안의 내용물을 전부 쏟아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팬 앞쪽을 낮게 기울인 상태에서 뒤쪽으로 당기듯 리듬감 있게 흔드는 것이 포인트인데, 생각보다 걸쭉한 농도 덕에 잘 튀지 않더라고요. 손목만 쓰면 금방 지치니 팔 전체로 움직이는 게 맞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소스가 각각의 쌀알을 얇게 코팅하면서 반짝이는 질감이 생깁니다. 이전에 집에서 리조또를 만들 때는 이 단계를 그냥 넘겼는데, 그때마다 소스와 밥알이 따로 노는 느낌이었던 게 이제야 이해됩니다. 불을 켜놓은 상태에서 버터를 넣으면 치즈가 뭉치거나 버터가 분리될 수 있으니 반드시 불을 끄고 진행해야 한다는 점도 실제로 해보면서 체감했습니다.
만테카레의 완성도는 결국 리조또 완성 직전의 농도가 좌우합니다. 수분이 너무 많으면 유화가 안 되고, 너무 적으면 딱딱하게 뭉칩니다. "자작하게 잠길 정도"라는 표현이 처음엔 모호하게 들렸지만, 두 번 만들어보고 나니 어느 시점인지 눈으로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알 덴테, 한국인 입맛엔 낯설지만 익숙해질 만하다
처음 알 덴테(al dente) 리조또를 맛봤을 때 솔직히 "덜 익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알 덴테란 이탈리아어로 "치아에 닿는"이라는 뜻으로, 파스타나 리조또 쌀을 완전히 무르게 익히지 않고 중심부에 약간의 저항감이 남도록 익히는 조리 방식을 말합니다. 한국식 쌀밥에 익숙한 입맛에는 처음에 낯설 수 있습니다.
이번 레시피에서는 신동진 쌀을 사용했는데, 국내에서 유통되는 품종 중 쌀알이 비교적 굵은 편에 속해 알 덴테 식감을 내기 좋다고 합니다. 제가 평소 쓰던 일반 단립종 쌀로 만들었을 때와 비교하면 씹는 탄력감이 확실히 달랐습니다. 국립식량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신동진 벼는 낱알이 굵고 밥맛이 좋아 재배 면적이 꾸준히 늘고 있는 품종입니다(출처: 국립식량과학원).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쌀을 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리조또와 빠에야는 쌀 표면의 전분을 그대로 활용해야 소스의 점도와 유화가 제대로 이루어집니다. 씻어버리면 전분이 제거되어 만테카레를 해도 소스가 묽게 흩어집니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쌀 대부분은 이미 세척 처리가 되어 있어 별도 세척 없이 바로 써도 됩니다.
조리 시간은 최소 15분에서 20분. 불은 항상 약불을 유지하고, 육수는 반드시 끓는 상태로 준비해 조금씩 부어가며 온도가 떨어지지 않게 합니다. 찬 육수를 부으면 팬 온도가 급격히 떨어져 쌀이 고르게 익지 않습니다. 요즘 자동 교반 냄비 제품들이 나오던데, 리조또나 죽처럼 계속 저어야 하는 요리를 자주 한다면 한 번쯤 눈여겨볼 만한 것 같습니다.
육수부터 파르미지아노까지, 집 냉장고로 충분했다
이번 레시피에서 의외로 감탄했던 부분은 재료 구성이 생각보다 단순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버섯 5종, 쌀, 버터, 타임,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화이트 와인, 그게 전부입니다. 고급 레스토랑 느낌을 내려면 뭔가 특별한 재료가 필요할 것 같지만, 실제로 관건은 재료의 종류가 아니라 각 재료를 다루는 방식이었습니다.
육수는 버섯 자투리로 만든 버섯 육수만 써도 되지만, 소고기 육수나 사골 육수를 쓰면 버섯과의 궁합이 훨씬 좋습니다. 닭 육수보다 소고기 계열이 버섯의 깊은 향을 받쳐주는 데 더 잘 어울리거든요. 마침 냉장고에 어머니께서 끓여주신 사골육수가 있어서 써봤는데, 육수 한 가지만 바뀌었을 뿐인데 풍미의 깊이가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제 경험상 육수에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줄은 몰랐습니다. 요즘 정육점에 가면 오래 끓여 만든 하얀 사골육수를 많이 판매하던데 더운 여름 집에서 끓여 사용하긴 번거로울 수 있으니 집 앞 정육점에 한번 방문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버터는 뉴질랜드산 앵커 버터처럼 풍미가 은은한 제품을 권합니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는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산지 명칭 보호 치즈로, 쉽게 말해 특정 지역·방식으로 만들어야만 이 이름을 쓸 수 있는 규격화된 치즈입니다. 일반 그라나 파다노와 비교해 감칠맛과 단맛의 층위가 다른데, 리조또 마무리 단계에서 불을 끈 뒤 넣어야 열에 의한 단백질 응고를 피할 수 있습니다(출처: Parmigiano Reggiano 공식 사이트).
화이트 와인은 오크 숙성을 거친 제품만 피하면 됩니다. 오크 향이 강하면 리조또 전체에 나무 향이 배어 버섯 본연의 향을 가립니다. 레시피에 계량 수치가 없는 것이 처음엔 불안했지만, 두 번째 만들 때는 오히려 그게 자유롭게 느껴졌습니다. 이탈리아 요리가 계량보다 감각을 먼저 키우도록 설계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리조또 만들 때 꼭 쌀을 씻으면 안 되나요?
A. 네, 씻지 않는 것이 기본입니다. 리조또는 쌀 표면에 남아 있는 전분이 조리 중에 녹아 나와 소스를 걸쭉하게 만들고 만테카레 시 유화를 돕습니다. 씻어버리면 이 전분이 제거되어 소스가 묽고 쌀알과 따로 노는 식감이 됩니다. 국내 제품은 대부분 세척 처리가 되어 있어 그냥 바로 쓰면 됩니다.
Q. 집에 사골 육수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요?
A. 버섯 자투리(손질하고 남은 밑동·줄기)를 끓는 물에 넣고 끓인 버섯 육수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시판 사골 육수나 소고기 육수 제품을 활용해도 충분합니다. 닭 육수보다는 소고기 계열 육수가 버섯의 깊은 향과 잘 어울리니 선택할 여지가 있다면 소고기 베이스를 권합니다.
Q. 만테카레를 못 하면 리조또 맛이 많이 달라지나요?
A. 꽤 달라집니다. 만테카레를 생략하면 버터와 치즈가 소스로 통합되지 않고 각각 따로 느껴지며 쌀알 표면에 코팅이 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팬을 흔드는 것이 어색하지만, 팬 앞쪽을 낮추고 팔 전체로 뒤로 당기듯 리듬감 있게 움직이다 보면 두 번째부터는 훨씬 수월해집니다.
Q. 표고버섯을 넣으면 안 되는 건가요?
A. 절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권장하지 않습니다. 표고버섯은 특유의 향이 강해 다른 버섯들의 향을 덮어버리고 요리 전체가 '표고버섯 리조또'가 되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 버섯의 향이 층위를 이루며 어우러지는 것이 이 레시피의 핵심이기 때문에, 처음 만들 때는 레시피대로 가는 편이 좋습니다.
결론
이번에 직접 따라 해보며 느낀 건, 이탈리아 요리의 어려움이 복잡한 기술이나 특별한 재료에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버섯을 씻지 않는 이유, 알 덴테의 기준, 만테카레의 원리를 이해하고 나면 과정 하나하나가 왜 그래야 하는지 납득이 됩니다. 이해가 있으면 실패해도 어디서 틀렸는지 바로 보이고, 다음엔 더 잘 잡을 수 있습니다.
방학 중 아이들 점심 메뉴로 고민이라면 버섯을 잘게 썰어 리조또에 숨겨 넣는 방식을 써볼 만합니다. 큼직하게 들어간 버섯은 안 먹더라도, 잘게 다져 소스에 녹여내면 생각보다 잘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엔 시간이 걸리고 팔이 좀 아프지만, 완성된 한 접시를 아이가 맛있게 비우는 걸 보면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