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한동안 궁중떡볶이를 제대로 만들 줄 몰랐습니다. 고기를 그냥 먼저 볶다가 간장 넣고 떡 넣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면 뭔가 허전한 맛이 나더라고요. 그러다 파를 먼저 볶는 순서 하나가 이 음식의 맛을 완전히 바꾼다는 걸 직접 겪어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이 매운 음식을 못 먹어서 집에서는 항상 간장 베이스의 궁중떡볶이를 만드는데, 이 순서를 알고 나서부터는 주말 점심마다 아이들이 먼저 찾는 메뉴가 됐습니다.

마이야르 반응이 궁중떡볶이 맛을 결정한다
처음에 파를 기름도 없이 팬에 올리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냥 탈 것 같아서 조바심이 났거든요. 그런데 제가 직접 써봤는데, 이게 정말 다릅니다.
기름 없이 대파를 팬에 올리면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 빠르게 일어납니다. 여기서 마이야르 반응이란 고온에서 단백질과 당이 만나 갈색으로 변하면서 복잡한 향미 물질이 생성되는 화학반응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파가 살짝 그을리면서 단순한 채소 향이 아니라 깊고 구수한 향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기름을 한 바퀴 둘러주면 파의 향이 기름에 배어들고, 그다음에 고기를 넣었을 때 풍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파가 갈색빛이 돌기 시작하면 기름을 넣고, 바로 불고깃감을 넣어 센 불에서 빠르게 볶아줍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화력인데, 강한 불에서 단시간에 겉면을 익혀야 육즙이 살아납니다. 고기의 핏기가 사라지면 불을 줄이고 다진 마늘을 넣는데, 마늘은 금방 타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는 계속 저어주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양념의 기본 비율은 간장 6, 굴소스 2, 설탕 2입니다. 여기서 굴소스는 글루탐산(glutamic acid)이 풍부한 재료로, 글루탐산이란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한식에서 흔히 쓰는 MSG의 주성분이기도 합니다. 굴소스를 넣었을 때 맛이 한층 깊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 감칠맛 성분 때문입니다.
제가 이 레시피에서 한 가지 다르게 쓰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단맛을 낼 때 설탕이나 배음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집에서 알룰로스(allulose)나 에리스리톨(erythritol)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알룰로스란 희귀당의 일종으로 설탕과 비슷한 단맛을 내지만 혈당 지수가 거의 0에 가까운 저칼로리 감미료입니다. 에리스리톨 역시 당알코올 계열의 감미료로 체내에서 거의 흡수되지 않아 혈당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배음료 자체는 한식의 배 사용 전통을 대중화한 재미있는 재료이고 저도 써봤는데 풍미 면에서는 훌륭했지만, 당 시럽 함량이 신경 쓰여서 지금은 개인적으로는 이쪽을 선호합니다.
궁중떡볶이를 만들 때 꼭 챙기면 좋은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파를 기름 없이 먼저 볶아 마이야르 반응으로 향미를 끌어올린다
- 고기는 센 불에서 빠르게 볶아 육즙을 잡는다
- 마늘은 불을 줄인 뒤 넣어 타지 않게 주의한다
- 간장 6, 굴소스 2, 설탕(또는 저당 감미료) 2 비율을 기본으로 한다
- 떡을 넣고 나면 중불 이하로 줄여 5분 이상 뭉근하게 졸인다
배음료 활용법과 남은 양념으로 볶음밥 만들기
저는 우리 아이들이 소고기와 양파를 좋아해서 처음부터 이 두 가지는 꼭 넣고 있습니다. 양파는 열을 가하면 수크로스(sucrose)가 분해되면서 단맛이 강해지는데, 수크로스란 포도당과 과당이 결합된 이당류로 가열 시 더 단순한 당으로 분해되어 단맛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양파를 고기와 함께 볶으면 이 자연스러운 단맛이 간장 베이스 양념에 녹아들어 배음료 없이도 충분히 달달한 맛을 냅니다.
떡은 쌀떡이 좋다는 의견도 있지만, 제 경험상 밀떡도 나름의 매력이 있습니다. 쌀떡은 익히면 전분 젤라틴화(gelatinization)가 진행되면서 국물이 걸쭉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여기서 전분 젤라틴화란 전분 입자가 물을 흡수하고 가열되면서 팽창하여 점성이 높아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때문에 쌀떡을 쓰면 별도로 농도를 맞추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소스가 코팅되는 질감이 나옵니다. 저는 그때그때 구하기 쉬운 걸로 쓰는 편인데, 둘 다 각자의 방식으로 맛있어서 어느 쪽이 낫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음식을 만들 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활용법이 있는데, 남은 양념으로 볶음밥을 만드는 겁니다. 처음부터 물을 조금 더 넣어 국물이 여유 있게 남도록 끓인 다음, 떡볶이를 다 먹고 나서 고기와 양파를 잘게 썰고 밥을 넣어 볶는 방식입니다. 이때 참기름 한 바퀴와 김가루를 넣어주면 기름의 지방이 향미 성분을 감싸면서 고소한 맛이 배가 됩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이 볶음밥이 처음 떡볶이보다 더 맛있다고 느낀 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한국식품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참기름의 주요 성분인 세사몰(sesamol)과 세사민(sesamin)은 열에 비교적 안정적인 항산화 물질로, 볶음 요리에 마지막에 넣어도 풍미를 유지한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식품연구원).
국내 쌀 소비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 속에서도 떡류 가공식품 시장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궁중떡볶이처럼 가정에서 소고기 등과 함께 활용하는 방식이 늘어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출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주말 점심이나 간식으로 직접 만들어 보시면 생각보다 훨씬 간단하다는 걸 느끼실 겁니다. 파, 고기, 마늘 순서만 지켜도 평소와 다른 맛이 납니다. 떡볶이를 다 먹고 남은 양념에 밥까지 볶아보시면, 한 번 해본 다음에는 일부러 양념을 좀 남겨두게 될 거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